블로그 | 2024.04.30 | #인터뷰
액정 화면이 깨진 휴대폰??, 뒤꿈치가 닳은 신발?, 고장 난 우산☂️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수빈이들 주목!
손재주 없는 곰손들도 여기 한번 방문하면 망가진 물건 다시 고쳐 쓰기, 문제없을걸요?
ep.4 수리상점 곰손
©수퍼빈
수퍼빈이 전하는 <다시 쓰는 쓰레기 이야기>는
1) 쓰레기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물리적으로 다시 사용한다.
2)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활동으로 쓰레기의 의미를 다시 쓴다.
두 가지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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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시 쓰는 쓰레기 이야기>와 너무 찰떡인 공간에 다녀왔어요!
망가진 물건들을 쓰레기로 배출하지 않고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 쓸모 있는 기술을 알려주는 "수리상점 곰손"을 소개합니다.
올해 2월에 망원동에 문을 연 수리상점 곰손은 국내 제로웨이스트 운동의 선두 주자, 알맹상점의 운영진 알짜(알맹이만 원하는 자)들이 십시일반 힘을 더해 탄생시킨 공간이에요. 수리에 진심인 사람들의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수퍼빈
"수리에 진심입니다."
수리상점 곰손 운영진, 곰손지기 혜몽
수)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곰) 수리상점 곰손을 운영하는 곰손지기, 혜몽이라고 합니다. 디지털 기기에 관심 많은 얼리어답터이자 환경 문제 해결에도 관심이 많은 쓰레기 덕후에요.
수) 반갑습니다. 꼭 다시 쓰는 쓰레기 인터뷰 자리에 모시고 싶었어요. 곰손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공간인가요?
곰) 수리상점 곰손은 이름 그대로 곰손이여도 수리가 가능한 공간입니다. 물건 대신 고칠 때 드는 재료를 팔고, 공구를 빌릴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물건을 오래 쓸 수 있도록 고치는 법을 알려주는 곳이에요.
제로웨이스트에는 여러 가지 분야가 있죠. 그런데 제1원칙은 거절하기 부터 시작합니다. 있는 걸 다 팔아버리면 어떻게 살겠어요. 그래서 갖고 있는 걸 잘 쓰고 나눠쓰고 바꿔 쓰는 게 중요한데요. 잘 쓰려면 고장 났을 때 고쳐 써야겠더라고요.
수) 맞아요, 곰손지기님이 가장 먼저 시도했던 수리 대상은 뭐였는지 궁금해요.
곰)휴대폰이에요. 저는 작년부터 아이폰 자가 수리 워크숍을 꾸려서 전국 확산을 시작했는데요. 휴대폰이야 말로 고부가가치를 지녔고 희소금속과 신기술의 복합체이잖아요. 하지만 개인이 고쳐서 사용하기 어려운 물건이기도 해요. 수리 접근성이 지금보다 많이 낮아져야 사람들이 수리를 시도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망원동 도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며 수리를 배우고, 동네 작은 수리점포를 엮는 수리 & 수선 페스티벌을 함께하면서 곰손에 대한 꿈을 키웠어요. 작년 11월부터 같이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해오던 동료들과 십시일반 투자금을 모아 올해 2월, 곰손을 열었습니다.
수리를 위해 분해한 휴대폰 ©혜몽
수) 요즘, 곰손지기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곰) 요즘 제 관심사는 돈입니다. 차태현, 조인성 배우가 나오는 어쩌다 사장 보신 적 있나요? 저는 가게를 내고 알았는데 그건 예능일 뿐이었어요. 왜냐면 월세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요. 지속가능성은 월세 충당에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저희는 6명이 운영하는데 각자 본래 직업에서 월급을 벌고 있고 자활 노동으로 이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목표도 월세 정도는 내자는 거였는데, 각종 공과금과 유지비도 제법 되더라고요.
수리상점 곰손 입구 ©수퍼빈
수) 캐릭터가 너무 귀여워요! 무얼 표현하려 했는지,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궁금해요.
곰) 아하하. 그렇다면 성공이네요. 제가 그린 캐릭터 곰손이입니다. 곰순이 아니고, 곰손이에요. *논바이너리 캐릭터입니다. 곰손이는 곰손을 가졌지만 수리에 진심인, 끊임없이 수리에 도전하고 골몰하는 캐릭터에요. 저랑 좀 닮지 않았나요?
*논바이너리: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대상
우산 수리 워크숍©혜몽
수) 수리상점 곰손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나요?
곰) 곰손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쓸모 있는 기술 워크숍이 열려요. 이면지 종이가 막 남아돌고, 애매한 자투리 천이 버려진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북 바인딩 워크숍을 열어요. 친구들이 집에 잠들어있는 재봉틀을 모아 여기 갖다 두면 자투리 천 미싱 워크숍이 열립니다. 아이폰 배터리가 빨리 닳고 더 이상 수리가 어렵다고 하면 아이폰 자가 수리 워크숍이 열리고요. 그외에도 일상에서 아주 유용한 드릴 워크숍, 용기 사용량을 줄이는 수분크림과 샴푸바 워크숍 등 다양한 일들을 만들고 있어요.
수) 배우고 싶어도 알 수 있는 길이 없던 교육 프로그램들이 많네요! 드릴 사용법은 한번 알아두면 평생 요긴하게 쓸 것 같고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곰) 주로 일상에서 얻어요. 내가 불편한 걸 워크숍으로 만들죠. 샴푸바, 수분크림도 혼자 만들며 한꺼번에 재료를 왕창 사야 해서 부담스럽고, 아이폰 수리는 혼자 도전하기에는 무섭고, 공구 워크숍은 공구를 빌려 쓸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저희가 가진 자원 안에서 스스로가 필요로 하는 걸 수업으로 만듭니다.
수) 프로그램들을 직접 진행하시면서 “이거 진짜 쓸모 좋다고 느꼈던 기술” best3를 꼽아본다면?
곰) 이건 개인적인 취향인데… 저는 재봉틀 워크숍, 드릴 워크숍, 아이폰 배터리 자가 수리요.
©수퍼빈
수) 어떤 사람들이 수리상점 곰손을 찾아오나요?
곰)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아요.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실천러이며, 더 오래 쓰는 것에 관심있는 사람.
환경문제에 관심은 없었지만 생활 기술을 배우는 데 관심 있는 사람.
수) 곰손지기님의 제로웨이스트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곰) 저는 영화과를 졸업했고, 영화감독이 안 되면 죽는 건 줄 알았어요. 근데 영화 산업 자체가 쓰레기랑 연결성이 너무 많잖아요. 특히 촬영장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게 너무 당연한 문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그걸 거스르기가 힘들었고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며 아직도 투쟁 중인 것 같아요.
2019년에 방문한 케냐와 인도의 쓰레기 처리 실태 ©혜몽
진실로 환경 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에요.
친구이자 알맹상점 대표인 금자랑 인도, 케냐 여행을 갔어요. "처음에는 안가본 곳이니 한번 가볼까" 정도로 생각했는데, 거기서 만난 환경운동가들에게 마음이 동해 쓰레기 문제에 관심갖게 되었어요. 쓰레기 문제는 한 국가에서 끝나지 않고 세계 전역으로 연결된다는 걸 알게됬거든요. 한국의 의류 폐기물이 인도와 말레이시아로 향하고, 한국발 쓰레기가 필리핀으로 간다는 얘기는 누구나 들어봄 직한 일이지만 그 쓰레기를 실제로 목격하고, 그 쓰레기를 직접 분류해야만 하는 사람을 보는 건 드문 일인 거 같아요. 저는 제가 보고 겪은 대로 움직이는 편인 거 같아요. 쓰레기를 봤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자 다른 선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수퍼빈
수) 우리나라에 도입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해외 제도가 있나요?
곰) 요즘 제 관심사와 연결되는 "수리할 권리 법안"입니다. 프랑스에는 정말 좋은 제도가 많은데요. 그중 하나가 수리가능 점수를 제품에 표시하는 제도와 수선지원금 제도에요. 프랑스의 낭비방지 순환경제법(Loi anti-gaspillage pour une conomie circulaire)과 간련되어 있어요.
초점이 되는 건 두 가지인데 일단 첫 번째는 수리하는 사람들한테 수리 지원금을 줘요. 예를 들어 내가 옷을 고쳐 입을 경우 그 의류를 수선하는 지원금을 주는 거죠. 두 번째로는 수리 점수가 나와 있는 전자제품을 구입할 때 그 안에 수리 점수를 기재해요. 예를 들어 10점 만점에 8점이라면, '수리가 8점만큼 잘 되는구나!' 확인하고서 구입할 수 있어요.
한국은 해외직구 시스템도 발달해있고 전자제품을 비교적 저렴한 값에 많이 사는데, 그게 수리가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특히 개인적으로 샤오미를 싫어하는데, 드라이기와 같은 제품을 아예 분해가 안되도록 일체형으로 만들어 수리가 불가해요. 프랑스의 수리할 권리 법안이 전 세계에 도입된다면 이런 제품들은 점수를 팍 깎아서 0점을 주는 거죠.
수) 이건 예상을 못했는데 수리상점 곰손이 망원시장 안쪽에 있어서 신기했어요. 위치 선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까요?
곰) 여기는 저희의 주 활동지입니다. 2018년부터 저와 친구들은 이곳에서 다회용 장바구니를 빌려주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한국 전통시장에는 비닐봉지 규제가 없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비닐을 달라고 하면 유료인데, 시장에서는 모든 비닐이 무료였어요. 시장에서 수도 없이 쓰는 비닐은 묻거나 태우면 땅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고 저희는 그걸 줄여보고 싶었어요.
장바구니를 빌려주면 비닐을 덜 쓸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빌리고 반납하는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았고, 시장 상인들은 저희가 하는 활동들을 '너희 뭐냐'며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대표적으로 반찬가게에 가서 그릇을 내밀고 "여기 담아주세요" 하면 "난 바쁘니까 포장된 것을 사렴"하는 것이죠.
©수퍼빈
수) 방금 곰손으로 들어오는 길에도 망원시장을 거쳐오며 정말 많은 양의 비닐봉지들을 마주쳤어요.
망원 시장에서 마주친 비닐봉지들 ©수퍼빈
곰)맞아요. 몇 년간의 노력에도 시장에서 비닐 사용은 줄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인들의 마음은 바뀌었어요. 그리고 시대도 바뀌었죠. 지금은 꽤 많은 사람이 시장에 자신의 용기를 가져와서 음식을 담아가요. 그때 시장 안 카페 구석에 차렸던 리필 샵은 지금의 알맹상점이 되었고, 수리 수선에 관심 많은 이들은 리페어 활동을 하다가 곰손을 차렸어요. 망원동이라 가능했던 일입니다.
망원동은 원래 물가가 저렴하고 한적한 땅값 싼 동네였어요. 망원동 근처 난지도에는 1978년부터 15년간 서울시의 쓰레기들이 모두 모였고, 높이 100m 거대한 두 개의 쓰레기 산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현재는 공원이 되었어요. 또 과거의 망원동은 한강이 가깝고 난지 저지대라 물난리가 자주 나서 홍수에 취약했어요. 하지만 2002년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고 치수 사업이 되면서 발전해야 했어요.. 그 시기 근처 홍대가 인디(음악과 미술, 예술인들)의 메카로 떠오르고 젊은이들이 몰려들면서 근처인 망원동도 홍대 부근과 함께 젊은 거리가 되었어요.
(좌)과거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 (우)현재의 난지도 하늘공원 ©출처:서울정책아카이브
그러나 무엇보다도 망원동은 성미산학교, 성미산 어린이집처럼 대안교육과 공동육아, 성미산마을이라는 서울에서 보기 어려운 공동체 마을 운동이 30년째 진행되며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있는 진보적인 동네입니다. 홈플러스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부흥하며 서울 시내 전통시장이 망할 때, 동네 주민과 시장이 힘을 합해 오랫동안 반대운동을 하면서 시장을 살렸어요.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 바로 앞 대형마트 분점이 철수한 사례가 탄생했어요. 결국 인근 지역인 합정역에 대형마트가 들어오긴 했지만, 전국 최초로 일부 전통시장 물품 일부의 입점 제한이 시행되었어요. 또 보상금으로 시장 음식을 드실 수 있는 카페엠이 있는 건물을 지었어요. 상인회 사무실과 공공 화장실도 같이 있어요.
이런 사건들을 거치며 오늘의 망원시장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현재 서울에서 가장 활발한 전통시장이 되었습니다. 2010년대부터는 옆 동네인 홍대에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면서 비싼 임대료에 쫓긴 인디 예술가, 문화기획자들이 인근인 연남동, 망원동을 이동하게 되어 문화적으로도 힙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이 동네는 그래서 서민형, 대안적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요.
©수퍼빈
수) 곰손지기님 마음속에 있는,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활동이 있는지 궁금해요.
곰) 6월에 곰손전파사를 열어보려고 해요. '전파사'를 아시나요? 90년대에 태어나 신도시아파트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저는 스무 살 후반에야 전파사를 처음 가봤어요. 망원동에 있었거든요.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를 고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신박한거예요. 수리 되냐고 여쭤보니 일단 두고 가라던 사장님은 며칠 후 [카세트 수리비 3만원 듭니다. 결정 답신요 -메카] 이렇게 문자를 보내오셨는데요. 대형기업 AS센터만 이용해 봤던 저는 이 아날로그 시스템에 바로 매료되었어요.
곰손에서 다양한 물건을 고치고 있지만 다들 기대하시는 것이 집에 고장 난 카세트, 토스터기, 다리미 같은 소형 가전의 수리입니다.
집에 묵혀뒀던 고장 난 소형 가전을 고칠 수 있도록 전파사 팝업을 진행하려고 해요. 기술을 가진 분들과 자가 수리 워크숍도 하고요.
수) 듣고 보니 어릴 적 아빠를 따라 방문했던 전파사를 보고 만물상 같다고 느꼈던 게 떠오르네요. 예전과 비교했을 때 요즘은 전파사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물건을 고치는 과정도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아요.
수) 음, 곰손 수리상점과 수퍼빈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곰) 순환 경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 아닐까요. 한번 만들어진 것이 끝에 끝까지 잘 쓰이다가 제대로 분류되어 다시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요.
수) 쓰레기는 _______(이)다. 쓰레기를 어떻게 정의하실지 궁금해요.
곰) "쓰레기는 내 일상이다."
일상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쓰레기가 생길지 말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아침에 늦게 일어나 헐레벌떡 나가느라 텀블러랑 스테인리스 용기를 챙기지 못한 날에는 결국 어디선가 어떻게든 쓰레기가 만들어지더라고요. 내가 원치 않고 아무리 거절하고 다녀도요.
쓰레기를 안 만들기 위해서 내 일상을 열심히 잘 살아내고 고민하고,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루를 잘 계획하고 고민하며 시작한 날에는 실패가 없어요. 쓰레기가 없죠.
모두 소비자가 고민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은 내 일상이 잘 돌아갈 수 있게끔 법안이 갖춰지나, 다회용기 대여와 같은 대안 시스템들이 정착되는 거나, 아니면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주어 일상을 더 풍요롭게 가꾸어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수) 마지막으로, 앞으로 수리상점 곰손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곰) 아직 곰손을 모르는 분들께도 한마디 부탁해요!
아, 이거 고장 났는데 그냥 버릴까. 싶을 때 생각나는 곳이 곰손이었으면 좋겠어요.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고장 난 물건 들고 가져와서 분해하고 골몰하고 수리하는 경험을 얻으면 좋겠어요. 혼자서는 어렵지만 곰손지기와 금손 멤버들이 도와줄 겁니다.